솔직히 저는 미슐랭 빕구루망(Bib Gourmand)이 뭔지 제대로 몰랐습니다. 그냥 미슐랭이면 다 별 달린 고급 레스토랑인 줄 알았거든요. 그 착각을 깨준 곳이 신당동에 있는 소바키리스즈였습니다.

네이버 지도를 뒤적이다 2026 미슐랭 가이드 이벤트를 보고 예약이 되는 집을 찾다 보니 딱 이 한 곳만 자리가 남아 있었고, 그렇게 반쯤 우연으로 다녀왔습니다.
간판도 없는 하얀 가게,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제면기
주소를 찍고 도착했는데 간판이 없었습니다. 그냥 하얀 외벽에 가게 앞에 메뉴판 하나 세워져 있는 게 전부였어요. 처음 오는 분이라면 한 번쯤 지나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가게 앞 주차공간은 2~3대 정도인데 이미 한 자리가 차 있었고, 가까운 청구공영주차장을 대안으로 염두에 두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들어가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건 제면기(製麵機)였습니다. 제면기란 말 그대로 면을 직접 뽑는 기계로, 소바키리스즈가 매일 그날 쓸 메밀면을 직접 만드는 자가제면(自家製麵) 소바집이라는 걸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자가제면이란 외부에서 면을 납품받지 않고 매장에서 직접 반죽하고 뽑아낸 면을 쓰는 방식을 뜻합니다. 이 때문에 면이 소진되면 그날 영업을 바로 마감합니다.

제가 방문했을 때도 13시 예약이었는데 이미 추가 예약과 워크인은 마감된 상태였어요. 토요일이라면 오픈 직후 회전이 그만큼 빠르다는 뜻입니다.
내부는 8인용 쉐어 테이블 하나, 4인석 테이블 몇 개가 전부인 아담한 공간이었습니다. 조명이 밝지 않고 노란빛이라 아늑하다는 느낌도 있었지만, 사진 찍기엔 조금 까다로운 환경이기도 했습니다.

조용하고 대화하기 좋은 분위기였고, 자리에 앉으면 따뜻한 메밀차와 함께 소바를 맛있게 먹는 방법이 적힌 안내문을 주십니다. 메밀차는 진하고 향이 깊어서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자가제면 소바의 맛, 그리고 제가 느낀 솔직한 온도 차이
제가 주문한 건 텐자루 소바(19,000원)였고, 함께 간 일행은 카모지루 소바(19,000원)를 골랐습니다.

텐자루 소바란 자루소바(せいろそば), 즉 차갑게 담아 낸 메밀면에 텐푸라(天ぷら)를 곁들인 메뉴입니다. 텐푸라는 튀김 반죽을 얇게 입혀 기름에 튀긴 일본식 튀김으로, 이날은 대하, 미니양배추, 그린빈, 표고버섯, 연근, 고구마가 나왔습니다.
튀김의 완성도 자체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바삭한 결이 살아 있었고 새우는 탱글했어요.

다만 솔직히 말하면, 19,000원이라는 가격에서 튀김 대부분이 채소라는 점은 조금 아쉬웠습니다. 미슐랭 선정 가게에서 가성비를 논하는 게 어색한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생각이 자꾸 들었어요. 그게 제 입맛의 기준이 어디에 맞춰져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메밀면은 정갈하게 담겨 나왔고, 육안으로 봐도 공장면과는 질감이 달랐습니다. 탄탄하고 단단한 식감에 메밀 곡향(穀香)이 진하게 배어 있었습니다. 곡향이란 곡물 특유의 구수하고 깊은 향을 뜻하는데, 면만 단독으로 씹어도 맛이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다만 쯔유(つゆ), 즉 소바에 찍어 먹는 간장 베이스의 육수를 면 끝에만 살짝 찍어 먹으라는 방식이 저에게는 조금 낯설었습니다. 양 조절이 생각보다 어려웠고, 메밀면 자체의 맛을 충분히 즐기려면 메밀에 대한 사전 친숙도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카모지루 소바는 온소바(溫そば), 즉 따뜻하게 먹는 소바로, 오리고기와 구운 대파가 들어간 진한 육수에 면을 담가 먹는 방식입니다.

처음 맡는 향이었고 유즈코쇼(柚子胡椒)를 중간에 육수에 풀어 먹으면 향이 확 바뀌어서 그 변화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유즈코쇼란 유자 껍질과 고추를 발효시킨 일본식 조미료입니다.
메밀면을 워낙 즐기지 않는 편이다 보니 미슐랭 선정 이유를 완전히 공감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재료 본연의 맛을 중시하는 철학이 가게 전반에 배어 있다는 건 느꼈지만, 그 철학이 저의 입맛과 딱 맞아떨어지진 않았어요. 그래도 이 집에서 제일 감흥이 왔던 건 따로 있었습니다.

소바키리스즈를 제대로 경험하려면 아래 순서를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네이버 예약으로 방문일 최소 며칠 전에 예약을 잡는다. 예약이 마감됐어도 빈자리 알람을 설정해두면 취소 자리를 잡을 수 있습니다.
- 자리에 앉으면 제공되는 소바 맛있게 먹는 법 안내문을 반드시 정독한다. 쯔유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맛의 인상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 계절 한정 메뉴를 꼭 확인한다. 네이버 메뉴판에 없는 타마고 소바나 라임 소바 같은 메뉴가 따로 있고, 이 계절 메뉴가 의외로 소바 입문자에게 잘 맞을 수 있습니다.
- 사이드 메뉴인 청어 조림(니신)과 후토마키는 소바와 별개로 꼭 시켜볼 것을 추천합니다. 특히 청어 조림은 가시가 전혀 없고 간이 잘 배어 있어서 소바와 함께 먹으면 균형이 맞습니다.
청어 조림 한 점이 이 집을 다시 생각나게 만든 이유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사이드로 주문한 청어 조림이 소바보다 더 인상에 남았거든요. 처음 먹어본 청어 조림이었는데, 젓가락으로 건드리기만 해도 부서질 만큼 부드러웠고 짭짤하면서도 은은한 단맛이 속까지 배어 있었습니다.

꽁치 간장 조림과 식감이 비슷하다고 느꼈는데, 그것보다 훨씬 정성이 들어간 결과물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가시가 단 하나도 없었다는 것도 놀라웠고요.
후토마키(太巻き)는 두껍게 만 일본식 김밥을 뜻합니다. 장어, 한치, 계란말이, 표고버섯, 박고지가 들어 있었는데 계란말이가 믿기 어려울 만큼 부드러웠습니다. 입안에서 따로 씹을 필요도 없이 녹아내리는 수준이었어요.

한치가 들어가 있어서 씹는 식감에 변화가 생기는 것도 좋았고요. 7,000원이라는 가격 대비 정성이 들어간 메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26 미슐랭 가이드 빕구루망(Bib Gourmand)이란 미슐랭 스타와 별개로, 합리적인 가격에 훌륭한 음식을 제공하는 레스토랑에 부여하는 등급입니다. 쉽게 말해 가격 대비 만족도를 인정받은 곳이에요.
소바키리스즈가 이 타이틀을 받은 이유는 (출처: 미슐랭 가이드 공식) 매일 직접 뽑는 면의 완성도와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조리 철학에 있다고 봅니다.
메밀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그 철학이 온전히 전달될 것이고, 저처럼 메밀에 익숙하지 않다면 처음엔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일본 소바 문화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는 (참고: 일본정부관광국 소바 소개) 소바키리스즈가 국내에서 경험할 수 있는 정통에 가까운 선택지가 될 것입니다.
다시 방문하겠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메밀면이 목적이라기보다 청어 조림과 계절 한정 메뉴가 목적이 될 것 같습니다.

미슐랭이라는 타이틀이 기대치를 높인 것도 사실이고, 그 기대치와 제 입맛의 간극을 확인한 방문이기도 했습니다. 다만 자가제면에 대한 진지한 태도와 가게 전체에 흐르는 정갈한 분위기는 분명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메밀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망설이지 말고 예약하시길 권합니다. 예약은 네이버에서 가능하고, 월·화는 정기 휴무입니다.